첫 문장부터 독자의 멱살을 낚아채는 소설이 있죠. 이런 소설은 읽어보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저에게 최고의 첫 문장은 외젠 이오네스코가 쓴 <<외로운 남자>>의 첫 문장입니다. 그 문장은, 바로 이렇습니다. (위 사진 속 인물이 외젠 이오네스코입니다.)
"나이 서른 다섯이면 인생 경주에서 물러나야 한다. 인생이 경주라면 말이다. 직장 일이라면 나는 신물이 난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였으니 이른 편도 아니었다. 예기치 못했던 유산을 물려받지 않았더라면 난 권태와 우울증으로 죽고야 말았으리라." 친척으로부터 거액을 유산으로 물려받고, 회사를 관두는 장면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을 괴롭히던 사장에게 살뜰하게 복수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사장에게 단 하루의 여유도 없이 퇴사를 알리고, 복수했다며 은근히 쾌재를 부릅니다.
제가 이 문장을 떠올린 이유는 이제 회사로 돌아갈 시기가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미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주말입니다. 이 뉴스레터를 받아보는 분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저는 미국 대학에서 연구원 신분으로 1년을 보냈습니다. 노동이라는 과업에서 면제되어 1년을 보내는 흔치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다시 일터로 복귀하려니 근육과 호르몬은 벌써 1년 전으로 돌아간 듯 합니다. 몸은 다른 때보다 피곤하고, 이유없이 들뜨던 감정들도 이제는 다 증발했습니다.
출근을 앞둔 대다수 직장인의 마음가짐이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폴 블룸이라는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가 쓴 <<최선의 고통>>이라는 책에서 재미있는 주장을 발견했습니다. 전 세계 직장인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 결과가 이 책에 나오더라고요. 응답자 63%가 스스로를 가리켜 '이탈형 근로자'라고 답했습니다. 이탈형 근로자는 회사에서 마음이 뜬 상태로 시간만 보내는 사람들이죠. 24%는 '적극 이탈형' 근로자인데, 이 부류는 적극적으로 불만을 표출합니다. (회사와 깊은 유대감을 느끼는 '참여형 근로자' 비율은 아쉽게도 13%네요.)
폴 블룸이 소개하는 한 연구에 따르면, 직업에서 느끼는 의미와 가치가 만족도와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대형 병원에서 일하는 청소부들을 인터뷰해보니 직업 만족도 차이가 상당이 컸습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 자신이 얼마나 기여했다고 느끼는지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졌습니다. 이런 일화도 나오네요. 케네디 대통령이 NASA를 시찰하다 청소부를 만나 어떻게 지내는지 묻자 "달에 사람을 보내는 일을 돕고 있다"고 답했다고.
요즘 MZ세대에게 이런 일화를 이야기하면 '피식' 소리가 되돌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실은 MZ세대의 끝단에 있는, MZ세대의 일원이라 크게 공감이 가지는 않네요. 목에서 시척지근한 물이 넘어올 정도는 아니지만, 저도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한 적은 거의 없는 듯 합니다. 이럴 때 위로가 되는 문장은 오직 필립 로스의 소설 <<에브리맨>에 나오는 문장 뿐입니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뭐, 어쩌겠습니까. 다른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하러 가야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