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검사를 받은지 1년이 지났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작년에 시력검사를 거의 5년 만에 한 것 같은데 검안사부터 의사까지 계속해서 눈 가까이에 있는 글씨가 잘 보이냐고 물었습니다. 잘 보인다고 하니 눈 앞에 글씨를 보여주면서 몇 가지 테스트를 했습니다. 테스트는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상대방에게서 저의 노안(老眼)을 증명하겠다는 결기를 느꼈습니다. 테스트는 무난히 통과했지만, 사실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글씨가 너무 작게 느껴져서 읽다가 포기한 책이 몇 권 있었습니다.
노안 증세를 예방할 수 있냐고 의사에게 물어보니 싱겁고 건조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눈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한다고 이미 알고 있는 것들, 그것들을 실천에 옮기는 것 뿐이라고. 다만, 그렇게 해도 막기는 어렵다고. 저의 노화는 의사에게 아무런 사건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종이책 대신 전자책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습니다. 전자책으로 글자 크기를 확대해서 읽었습니다.
사실 저는 전자책보다 종이책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일본의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는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라는 책에서 종이책 예찬론을 펼칩니다. 저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우치다 다쓰루에 따르면, 전자책은 책장을 공간적으로 형성하지 못한다는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책장은 다양한 욕망과 환상이 얽혀있는 곳입니다. '읽을 마음은 없지만 내가 읽었다고 사람들이 생각해 주길 바라는 책', '당분간은 읽을 마음이 없지만, 언젠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이 책장에 혼재합니다. 이런 책들은 책장 앞의 사람에게, 수시로 읽어야 한다는 압박을 선사합니다. 우치다 다쓰루는 이런 압박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책이라는 물건은 '언젠가 읽어야 한다는 관념'에 터를 잡아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전자책을 읽어보니 많은 장점이 존재하더군요. 글씨를 확대해서 읽으면 확실히 눈이 덜 피곤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노안 예방에도 좋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벽돌 책'을 들고 읽을 때보다 손이 훨씬 자유로워지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눕거나 엎드려서 손가락만으로 페이지를 간단히 넘기면서 잠이 올 때까지 기다려 보기도 합니다. 아예 이참에 저장 용량 큰 '아이패드'를 새로 하나 구입해서 거기에 책장을 구축해보려 합니다.
종이책 애호가들은 그래도 종이 냄새, 책장을 넘기는 감촉이 그립지 않냐고 의문을 가지실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책을 둘러싼 이런 경험은 특권이라고 합니다. 일본 작가 이치카와 사오가 쓴 소설 <<헌치백>>에 나오는 주장입니다. 이치카와 사오는 중증 장애인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 샤카 역시 장애인입니다. 샤카에게 독서는 다른 어떤 행위보다 등뼈에 부하가 많이 걸리는 일이라고 합니다. 종이책을 읽으려면 책을 들어야 하고, 책장을 넘길 수 있어야 하고, 독서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비장애인'만 가능한 행위입니다. 그래서 샤카는 이런 특권을 깨닫지 못하는 종이책 애호가들의 무지한 오만함을 증오한다고 독백하죠. (이치카와 사오는 <<헌치백>>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수상 소감에서 전자책 보급 확대를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노안이 찾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밀려오니, 종이책이라는 저에게 익숙한 특권 하나를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다른 특권이 있는지 성찰해보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