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미국 살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짐을 싸고 아내와 함께 넷플릭스 드라마를 내려받는 것으로 미국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인천에서 출발해 애틀랜타로 갈 때 느꼈던 따분함, 지루함이 떠올라 미리 채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게다가 이번엔 시간이 더 걸린다고 하더군요. 이유는 '제트기류' 때문이었습니다. 제트기류는 북극과 중위도 지역 사이 하늘에 존재하는 강한 바람의 흐름인데 서쪽에서 동쪽으로 붑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는 이 제트기류를 얼굴로 맞아가며 날아가니 비행 시간이 더 걸립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예상과 빗나갔습니다. 예정 비행시간은 15시간 정도였지만, 비행기에서 23시간을 보냈습니다. 미국 애틀랜타에서 비행기가 출발한 시간이 낮 12시, 그러니까 한국시간 새벽 2시였습니다. 원래 한국시간 오후 6시가 되기 전 도착할 예정이던 그 비행기는 7시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 비행기에서 빠져나온 시간이 자정을 넘긴 새벽 1시 인근이 됐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정주행으로도 23시간을 버티기는 힘들었습니다.
사연이 길고 복잡합니다. 폭설로 공항 주기장을 못 찾은 상태라 착륙을 하기 어렵다는 기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하늘에서 한 시간을 보내고 공항에 도착했는데도 아직 주기장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승무원들 이야기나 주변 승객들 대화를 귀동냥해보니 폭설 때문에 비행기가 대거 결항하면서 뜨지 못한 비행기들이 공항에서 '주차난'을 겪고 있고, 그 바람에 애틀랜타에서 날아온 비행기가 길 바닥 위에 서있게 됐답니다. 비상구를 열고 내려갈 수도 없으니 승객과 승무원 모두 옴쭉달싹 못하고 6시간 정도를 기다렸습니다.
알고보니 이것 역시나 제트기류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제트기류는 북극의 찬 바람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일종의 벨트 역할을 하는데 온난화로 이 벨트가 약해지면 느닷없이 북극 찬 바람이 한반도까지 쑥 내려오기도 합니다. 온난화로 11월 수능 한파는 사라졌지만, 게릴라 폭설이 난데없이 찾아온 겁니다. 기후 변화가 정말 남 일이 아니라는게 한국에 오니 비로소 실감이 납니다.
최근에 관심있게 보는 책이 <<몰락의 대가>>라는 역사서입니다. 이 책에는 명나라가 기후 변화 때문에 망했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역사 시간엔 만주족의 침략이 원인이라고 배웠는데 배운 것과는 조금 결이 다르죠?) 17세기에 전 세계적으로 겨울 추위가 길어지는 '소빙하기'의 절정이 찾아왔고, 이 추위는 동아시아 지역에 치명타가 됩니다. 겨울이 길어지면서 쌀을 재배할 수 있는 시기는 짧아졌고, 봄이나 여름엔 비가 오지 않아 논밭이 건조해졌습니다. 곡물 가격이 치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명나라 정치 체계는 이 위기와 혼란을 수습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대신 만주족은 춥고 건조한 기후에 적응을 잘 하는 편이라 이들은 세력을 키워 명 황실을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저자 티모시 브룩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조선 역시 명나라가 겪은 것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합니다. 태평양과 시베리아 사이에 끼인 '반도'는 기후 변화에 취약할 수 밖에 없고, 기후 재난이 늘 가까이 도사리고 있다고 티모시 브룩 교수는 경고합니다.
비행기에서 23시간 갇혀있어보니 정말 이 기후 변화에 올바로 대처하지 않으면 한반도가 명나라의 운명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다행히 폭설에도 아파트 앞 감나무 감들은 떨어지지 않아 새들은 감으로 시장기를 달래고 있었지만, 때 이른 폭설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