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비슷하다고 들었습니다만,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도 한 반 학생의 절반 정도는 '수포자'였습니다. '수포자'들은 숫자와 기호의 숲 속에서 길을 잃고 잠들었죠. 그럴 때면 70년대말 혹은 80년대 초반 학번으로 추정되는 수학 선생님이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이 시간 이후 조는 학생은 앞으로 나와서 이마로 분필을 깹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체벌이 일상이었으니 이마로 분필을 깨는 행위는 '귀여운 맴매'로 봐야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여 년만에 진짜 계엄령을 봤습니다. 포고령 내용이 '귀여운 맴매'가 아니더군요. 미국 언론 반응이 궁금해서 살펴보니 미국 지식인들이 즐겨본다는 <<디 애틀랜틱>>이 눈에 띕니다. 영국 정치학자 브라이언 클라스가 글을 기고했습니다. 클라스는 떠오르는 스타 정치학자로 국내에 자주 소개됐는데, 특히 이번 칼럼은 읽어볼만 합니다. 칼럼 제목이 '워싱턴에 보내는 한국의 경고' 입니다. 이번 일을 놓고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맞이하는 미국에 '교훈적인 이야기'(cautionary tale)라고 평가합니다.
클라스는 정치학자 후안 린츠의 경고를 인용했습니다. 한국의 혼란은 린츠가 경고한 '대통령제의 위험'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겁니다. 린츠는 의회의 통제를 받는 총리가 아닌, 대통령이 행정권을 행사하면 민주주의 실험이 실패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린츠는 정치 지도자의 개인적 자질, 정치인의 덕목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대통령제는 본질적으로 대통령의 품성에 따라 성패가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듯 합니다. 그러면서 린츠는 단 하나의 예외가 있는데, 그건 미국이라고 말합니다. (린츠의 책을 읽어보면서 좀 더 풍성한 논의를 살펴보고 싶은데 국내엔 이미 절판됐네요.)
그렇다면 대통령제를 포기해야하는지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체제로서 대통령제와 의회중심제 가운데 어느 제도가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유명한 정치학자 로버트 달이 쓴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를 보면 대통령제와 의회중심제가 민주주의 안정에 미치는 효과는 여전히 논쟁 중이라고 나오네요. 다만, 로버트 달도 대통령제가 허약한 기반 위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미국 대통령에게 기대되는 여러 역할이 동시에 수행될 수 없다는 겁니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대통령이 공약과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의원들을 구슬리고 꼬드길 뿐만 아니라 위협하고 굴복시키는 정당 지도자, 해결사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동시에 대통령이 탁월한 국가 지도자로서 지성과 지식, 인격을 갖춘 국가의 상징적 인물이 되기를 원합니다. 누구도 이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이렇게 취약한 제도가 미국에서 250년, 한국에서 30년(87년 민주화 이후) 동안 살아남았으니 이것도 연구 대상이겠지요? 린츠의 책을 읽지 못해 <<디 애틀랜틱>> 기사로 어림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대통령제의 끈질긴 생명력을 린츠는 미국의 특수성과 예외성에서 찾는 듯 합니다. 그런데 브라이언 클라스가 칼럼 말미에 대통령제가 유지될 수 있는 근본 토양을 짧게 말하는데 이 말이 사실 누구나 아는 정답입니다. "Rather, it(presidential democracy) can survive its moments of greatest peril through the actions of brave people who cherish ideals more than power." 권력보다 이상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용감한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대통령제 민주주의는 위기의 순간을 넘긴다고요... 다만, 이런 사람들이 풍부하게 공급되는 건 아니라고 클라스가 학자답게 살짝 냉소와 물음을 남겼네요. 우리에겐 여전히 많은 숙제가 남아있는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