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vin's Letter
그랜드 캐니언에 다녀왔습니다. 위 사진이 그랜드 캐니언 모습입니다. 인생을 걸고 '인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랜드 캐니언에 가기 전에 인왕산에 올랐던 게 마지막 산행입니다. 인왕산 정상 삿갓바위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절경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랜드 캐니언은 인간의 시야각을 압도하는 파노라마의 위용을 선사했습니다. '인생샷'을 찍기 위해 인생을 걸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왕산 삿갓바위가 초라하게 느껴진 건 사실입니다.
다만, 이 마음이 10분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랜드 캐니언을 돌아보고나니 막걸리가 삼삼하게 떠오르는데 매점에서는 얇은 햄이 들어간 샌드위치만 팔고 있었습니다. 음주 산행은 위험하지만, 산행 뒤 마지막 감흥을 끌어올리고 추억의 저장고에 잘 갈무리시켜주는 존재는 역시 막걸리 아닌가요. 산해진미를 먹고 난 뒤에도 결국 익숙한 김치 한 점에 젓가락이 가는 심리가 이런 것인가, 싶었습니다.
김치 한 점이 구미를 당기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김치가 산해진미를 압도한 재미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일본의 역사 연구자 이와마 가즈히로가 쓴 <<중국 요리의 세계사>>를 보다 알게된 이야기입니다. 중국 요리를 세계 3대 요리라고 부르지만,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중국 요리는 없다고 합니다. 김치가 2013년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사실을 떠올려보면 조금 이해가 안가는 대목입니다. 김치보다 먼저 세계적으로 알려진 중국 음식이 꽤 많을테니까요.
김치에 자극받은 중국이 자국 음식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8대 요리 품평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중국이 칼을 갈았을테니 재료의 희귀함이나 풍미 등에서는 아마 중국 역사상 최고 수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결국 등재엔 실패했습니다. 중국 음식이 김치보다 열등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중국 정부가 전략을 제대로 못 세웠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유네스코는 김치를 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면서 '이웃과 같이 담가 나눠먹는 공동체 정신'을 등재 이유로 밝혔습니다. 그래서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유산은 김치가 아니라 정확하게는 '김장'입니다. 중국 정부는 자국의 식문화에 얽힌 고유성을 세계인이 공감할 만한 보편적 언어로 설명하는데 실패했습니다. 흔하디 흔한 음식에도 인류가 보존하고 전승해야 할 문화와 역사,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발굴해내는 감식안이 오감을 휘어감는 맛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랜드 캐니언을 다녀온 뒤에도 인왕산이 떠오르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여행이 길어지는 탓에 정식 뉴스레터 발송이 생각보다 늦어질 것 같습니다. 딱히 아쉬워하시는 분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안부 인사차 '번외편'을 하나 발송했습니다. 지금 여기는, 인왕산 밑자락에서 놋주발에 막걸리를 담아 마신 추억이 쨍쨍 울리는 한낮의 애리조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