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한낮 더위는 여전해도 아침과 저녁엔 건들바람이 붑니다. 기어코 가을이 다가온 것 같습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죠? 몇 년 전 TV를 보니 이 말이 일제의 잔재라고 주장을 펼치는 분이 있었습니다. 역사강사로 유명한 그 분은 1920년대 일본이 문화 통치의 일환으로 조선인들에게 일본 책 읽기를 권장하려는 취지로 가을은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라는 말을 퍼뜨렸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그 주장을 접하고, 다소 독특한 '극일론'이라고 느꼈습니다. 한국 근대의 뿌리를 따져보면 결국 '이식된 근대'라는 한계에 가닿지 않을 수 없죠. 자유, 경제, 물리, 화학처럼 일찍이 조선 땅에 존재하지 않았던 생소한 한자어들은 일본에서 건너온 개념어들입니다. 1814년 최초의 영일사전이 만들어질 때 일본의 지식인들은 서구의 개념어들을 어떻게 번역할지 고민한 끝에 liberty, economy, physics, chemistry를 저런 말들로 옮겼다고 합니다. 이런 말들을 이제 폐기하는게 '극일'일까요?
물론 저는 이런 단어들도 우리의 사고 체계와 일상의 언어 감각에 맞게 새롭게 번역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낯선 일본의 근대식 신조어가 사물과 관념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을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건너온 '공화'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 왕정의 반대말입니다. '공화'는 미츠쿠리 쇼고라는 일본의 지리학자가 19세기에 Republic에 대한 번역어로 중국의 사기에서 찾아낸 말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렇다면 공화주의는 무슨 뜻일까요? 민주와는 뭐가 다를까요? 어쩌면 아직도 우리는 Republic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이라도 '공화'를 대체할 말을 찾아내든가, '공화'라는 개념이 우리 일상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 단어를 깊이있게 성찰하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이런 지적 논의는 정체된 상태에서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말을 구악과 병폐로 바라보는 주장은 소모적 논쟁의 연장선에 불과합니다. 붕어빵이 일본의 '타이야끼'에서 유래했다는 이유로 붕어빵을 먹지 말자는 궤변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독서 문화엔 이제 일본의 잔재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책이 가장 많이 팔리는 계절은 신학기가 시작되는 3월입니다. 아마 참고서나 문제집이 많이 팔릴겁니다. 가을이라고 해서 책이 더 많이 팔리지도 않는데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는 낡은 아포리즘의 국적을 따지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