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제 작가의 <0%를 향하여>라는 소설을 보면 인생 첫 극장, 청주 시내에 있는 '쥬네쓰 시네마'에 대한 묘사가 나옵니다. "팝콘과 버터구이 오징어. 냄새. 좁은 계단. 줄 서 있던 사람들의 모습. 기억나지만, 그들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모두 인생의 어느 순간에 접했던 극장에 대한 기억이 작가의 묘사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역시 기억을 되짚어보니 살면서 극장에 100번은 갔을 것 같습니다. 마주친 관객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버터구이 오징어 냄새는 기억에 남습니다.
한동안 관객 끌어모으기에 골몰하던 극장이 '먹부림'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버터구이 오징어는 물론이고, 치킨에 잡채밥까지 팔았습니다. 관객들의 민폐 논쟁도 이어졌습니다. 음식을 먹는 소리와 음식 냄새가 영화 몰입에 방해가 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예민한 청각과 후각이 문제라는 반론도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순간이 극장이 멸종하고, 관객이라는 공동체는 휘발되던 시점이었습니다. 버터구이 오징어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집에서 편히 보겠다며 흩어졌습니다.
냄새 뿐인가요? 팔걸이에 올라온 옆 사람의 팔, 의자에 닿는 뒷 사람의 무릎, 나의 사고 흐름을 방해하는 누군가의 말 소리, 나의 동공을 찌르는 듯한 앞 사람의 삐죽 튀어나온 머리 등 극장에서 타인의 냄새와 소리, 몸짓은 박멸되어야 할 이물질에 불과해졌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극장 대신 안방 OTT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타인과의 접촉을 견디지 못하는 예민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해나 작가의 소설 <화양극장>엔 조금 특별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직 배우 할머니와 임용 고사에 8번 떨어진 여자가 우연히 극장에서 만나 친해지죠. 숨소리가 커서 다른 사람의 영화 관람을 방해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여자에게 할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극장을 찾는 이유 중에는 타인과 같은 포인트에서 폭소하고 글썽이는 교류의 순간을 소중한 기억으로 여기기 때문도 있다고, 자신도 그렇다고, 그러니 여기서는 크게 숨을 쉬고 웃고 울어도 된다고.
맞습니다. 앞 사람이 웃을 때 더 크게 웃고, 뒷 사람이 울 때 갑자기 슬퍼진 경험이 있습니다. 그게 감정의 전염인지, 감정의 공명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인생 첫 극장인 '대한극장'이 문을 닫았습니다. 이렇게 극장은 퇴장하나봅니다. 가끔은 낯선 사람들과 함께 크게 숨을 쉬고 웃고 울던 순간이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그 순간을 맞을 수 있다면, 콧구멍을 쑤시고 들어오는 냄새가 버터구이 오징어든 치킨이든 별 상관 없을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