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 <<도시와 개들>>엔 고등군사학교에 입학한 소년들이 등장합니다. 학교와 군대의 가장 나쁜 점만을 모아둔 것 같은 고등군사학교는 바르가스 요사가 실제로 경험한 곳이기도 합니다. 바르가스 요사는 '마치스모'라고 불리는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마초 문화가 횡행하던 그곳을, 반드시 인생 첫 소설의 배경으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소설 속 고등군사학교에서는 상급생이 신입생을 '개'라고 부릅니다. 신입생들은 상급생들에게 끌려가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는 것이 관례입니다. 신고식에서 상급생들은 신입생들에게, 이런 말로 싸움을 종용합니다.
"개 두 마리가 거리에서 만나면 뭘 하지? 대답해, 개야. 지금 너에게 말하고 있잖아."
"모르겠습니다, 생도님."
"싸우지." 목소리가 말했다. "짖으면서 서로 달려들어. 그리고 물어뜯지."
그리고 상급생들은 싸움에서 진 신입생을 '암캐'로 부르며 조롱합니다. 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년은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죠.
"난 군인이 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여기서는 더욱 남자가 되어야 해. 자기를 방어하는 법도 배우고 삶이 어떤 건지도 알아야 해."
한국 소년들도 학교와 군대, 회사에서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청년이 되고 중년이 된 듯 합니다. 나이 많은 남성들은 남성성을 강조하면서 복종을 강요하고, 어린 남성들은 모멸을 견디면서 남성들의 위계 질서 안으로 편입됩니다. 지금은 좀 달라진 것 같습니다만, 강한 자만이 살아남았다는 1990년대엔 분명 그런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다른 형들과 기질이 다른 약한 형을 본 기억이 납니다.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라고 노래하던 가수 신해철입니다. 어영부영 불면의 밤을 보내던 20대 시절, 어느 심야 라디오 방송에서 신해철이 술과 담배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을 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빗나갔습니다. 술과 담배는 늦게 배울수록 좋다는 겁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술과 담배를 '시작하면' 그 전에 기쁨을 주던 것들에서 더는 기쁨을 누릴 수 없다고.
퍼포먼스의 파격으로 따지면 서태지가 한 수 위인 듯 하고, '노는 가락'으로는 듀스가 있지만 그 시절 소년들이 신해철을 형으로 기억하려는 이유가 이런 말과 행동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신해철 10주기 추모 다큐 <<우리형 신해철>>이란 프로그램을 보다 떠오른 잡감(雜感)을 정리해보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