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 프로그램에 몰입해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굳이 언급하자면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입니다. 처음엔 번역투의 문어체를 입말로 쓰는 요리사가 조금 어색했습니다. 위화감(違和感)의 뜻은 '조화되지 아니하는 어설픈 느낌' 입니다. 제작진의 숨은 제작 의도가 위화감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인가 싶었습니다. 음식 한 그릇에 생경한 언어, 거창한 수사를 동원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에서 위화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출연자가 보섭살을 굽는 대목에서 단단히 꼬여있던 저의 마음도 삶은 청경채처럼 흐물해졌습니다. 평가를 맡은 요리사는 보섭살의 상태를 보고 '뀌숑'이 중요한데, 이 고기는 그렇지 않다며 가차없이 혹평합니다.
프랑스어 'cuisson'을 여러 사전에서 찾아보니 고기의 익힘 정도를 표현하는 말이라고 나옵니다. 이 말은 한국어로 대체할 말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한국에 고기의 익힘을 표현하는 말은 "핏기만 가시면"과 "바싹" 두 가지인 듯 합니다. 이 표현 두 가지로 스테이크 육질과 육즙의 수많은 단계를 묘사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럴 땐 그냥 '뀌숑'이라는 프랑스어를 가져와야죠.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생소한 단어를 구사할 수 밖에 없는 요리사, 아니 셰프들의 처지가 이해가 가더군요. 미각을 정교하게 단련시키려는 셰프들은 국적과 문화를 가리지 않고 온갖 용어를 빌려오는 듯 합니다. 예를 들어 <<흑백요리사>>에는 '우마미'(うま味)라는 일본어가 나옵니다. 셰프들은 음식의 '킥'(kick) 이라는 말도 쓰죠. 적확한 한국어로 번역할 수 없다면, 이런 전문 용어의 사용을 존중해주는게 맞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요리사와 셰프라는 두 단어의 말맛이 다른데도 한국엔 안타깝게도 셰프라는 말조차 대신할 단어가 없긴 합니다.)
직업의 영역이 구축되면 종사자들이 전문 용어를 수입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직접 만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충무로 근처 인쇄소 골목에 가도 '도무송', '오시'처럼 생소한 단어를 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옆 공사 현장에 가도 '아시바', '구배' 같은 용어가 난무합니다. 심지어 판교에 가면 "린하게 일한다" 같은 '판교 사투리'가 통용된다고 하죠. 콩글리쉬, 일본어의 찌꺼기로 비하하며 이런 말을 교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외부인의 시각에 그닥 동의하지 않습니다. 의사와 간호사, 약사들이 주고받는 '외계어' 같은 용어들에 대하여 정작 환자들은 소외감을 느끼면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권위를 부여합니다. 다른 직업에 대하여 상반된 태도를 취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요즘 이런 말을 쓰시는 분들을 보면 업에 대한 자부심과 자조, 성취감과 애환이라는 이중적 감정을 느낍니다. 이게 밥벌이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재주를 세상에 내어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에게선 언제나 지엄함이 느껴집니다. <<흑백요리사>>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도 아마 그것 때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