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상황이 비슷합니다. 루이스 메넌드라는 작가가 지난 8월 잡지 <<뉴요커>>에 쓴 글을 우연히 읽었습니다. 미국 도서 구매의 절반 정도는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서점이 필요한 이유가 이 글의 주제입니다. 관심있는 책에 대하여 챗봇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시대지만, 챗봇이 녹색 머리와 문신, 유머 감각을 가지고 '색다른 제안'을 하는 진짜 서점 직원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서점이 필요하다는 게 루이스 메넌드의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미국 서점에서 직원들이 독서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경우를 자주 봤습니다. 직원들이 직접 책에 대한 간단한 서평을 메모지에 써서 서가에 붙이기도 하고, 서점에서 직원들의 추천 책을 따로 진열하는 공간을 만들기도 합니다. (위에 있는 하버드대 서점 사진을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물론 직원들이 손님들에게 직접 책을 추천해 주기도 합니다. 책에 대한 섬세한 취향과 감상을 손님과 직원이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책을 매개로 공동체가 만들어지는거죠.
심지어 서점 직원이 도서계의 유명 인사가 되기도 합니다. 뉴욕에 있는 유명 서점 '스트랜드'의 벤 맥폴은 '스트랜드의 심장'으로 불릴 정도로 뉴요커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벤 맥폴은 1978년부터 손님들에게 책을 추천해주거나 책의 위치를 알려주고, 중고책의 가격을 매기기도 했습니다. (스트랜드는 중고책과 신간 서적 둘 다 판매합니다.) 벤 맥폴은 특별한 직책 없이 '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서점이라는 신전에서 73살의 나이로 숨질 때까지 '성소지기'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습니다. 2021년 12월 벤 맥폴이 사망한 뒤엔 뉴욕타임스가 애도를 담아 부고를 전했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 벤 맥폴은 콜슨 화이트헤드,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유명 작가의 책을 비롯해서 손에 쥔 책이 뭐가 됐든 손님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특히 단골 손님에게 딱 맞는 책을 발견했다 싶을 때면 그 책은 따로 숨겨뒀다 건넸다고 하네요. 빅 데이터가 많은 정보를 축적하고, 인터넷 쇼핑몰의 배송이 빨라진다 하더라도 벤 맥폴과 손님의 정서적 유대만큼은 흉내낼 수 없을 듯 합니다.
저도 최근에 스트랜드에 다녀왔습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표된 직후라 한강 작가의 책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정작 제 눈길을 잡아끈 건 매대에 여전히 남아있는 벤 맥폴의 추천 도서들이었습니다. 퇴근길에 들른 서점에서 "이 책, 꼭 읽고싶어 할 것 같아서 따로 챙겨뒀어요"라고 말을 걸 것 같은 벤 맥폴을, 아직도 뉴요커들이 그리워하기 때문이겠죠?
서울 서점가에 '한강앓이'가 유행이라면, 뉴욕 서점가엔 'Remembering Ben'이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노벨문학상은 한국과 한국 문학에 쏟아진 벼락같은 축복이죠. 다만, 저는 평범한 사람들이 서점에서 나누는 사소한 이야기가 더 간절하다고 믿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