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가장 아름답고 뜨거운 순간은 역시 '선거'입니다. 미국 대선이 열흘도 남지 않았습니다. 미국 대선을 한국에서는 '쩐의 전쟁'이라고 부르죠. 미국 언론들도 거액 기부자를 자주 공개하고 있습니다. 지난 16일 워싱턴포스트에서는 이번 대선의 거액 기부자 50명을 공개했습니다. '명'이라고 표현했지만, 여기엔 회사나 기타 단체도 포함됩니다.
50명 중 17위는 코크 산업(Koch Industries)입니다. 찰스 코크와 데이비드 코크 형제가 이 회사의 소유주입니다. 지속적으로 공화당을 지원해 온 이들은 미국 정치판을 좌우하는 '어둠의 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치인을 직접 후원하기도 하지만, 자신들이 추구하는 신념을 정교하면서도 세련된 방식으로 정치권의 중요한 의제로 만들어왔습니다. 연구 기관을 지원하거나 자신들의 뜻을 설파할 수 있는 지식인을 양성하는 방식이죠. 미국 <<뉴요커>>의 탐사전문기자 제인 메이어는 코크 형제가 미국 정치를 장악한 과정을 추적해 2016년 <<다크머니(Dark Money)>>라는 책에서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제인 메이어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코크 형제의 후계자, 코크 형제의 정치적 결과물이라고 지목했습니다.
9위는 일론 머스크입니다. 특별한 설명이 필요없는 인물입니다. 요즘 머스크의 행보를 보면 기업인인지, 정치인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노골적으로 공화당 후보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머스크의 트럼프 지지 활동을 보면 다른 부자들의 정치 후원과는 결이 다릅니다.
머스크는 소셜미디어 'X'를 동원해 허위 정보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투표 자격 없는 비시민권자가 유권자로 등록했을 가능성 등을 제기하면서 선거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머스크의 주장을 반박하는 사람은 머스크 추종자들의 표적이 되기도 합니다. 머스크 계정 팔로워가 2억 명이니 머스크는 지금 어지간한 언론사를 능가하는 파괴력을 직접 행사하고 있는 셈입니다. 머스크가 소유한 소셜미디어 'X'가 극우 성향 콘텐츠, 허위 정보의 온상이라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됩니다.
코크 형제는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머스크의 정치 개입은 거칠고 투박합니다. 막대한 부와 소셜미디어의 기묘한 이종 교배, 선동으로 투표 행위를 왜곡하는 머스크의 기행에 미국 지식인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습니다. 부유한 기부자들이 정치 캠페인에 지금보다 더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한다면 우려가 공포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 시사 잡지 <디 애틀랜틱>엔 최근 "일론 머스크가 진정 원하는 것(What Elon Musk Really Wants)"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글을 쓴 작가 프랭클린 포어는 트럼프를 가리켜 머스크의 '특이점(singularity)'으로 부릅니다. 극단적 상상력으로 인류의 삶을 바꾸고, 세계를 재편하고 싶어하는 괴짜 머스크에게 '지구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트럼프가 강력한 우군이 될 테니까요. 이제 미국을 넘어 전 지구가 머스크의 실험 무대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주주의가 제도화된 상황에서 자본이 정치 권력을 포섭하는 시대의 상징은 코크 형제였습니다. 머스크가 트럼프를 트로이 목마로 활용해 백악관에 입성하는 시대는 정의내리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머스크의 인생을 넘어 미국 정치에 특이점이 온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