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관행이 한국에서는 낯선 광경이긴 합니다만, 미국에서는 언론 자유의 영역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또 미국의 많은 언론인들은 유권자의 정치적 선택을 돕기 위하여 이런 공개적 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LA타임스 논설위원이면서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던 로버트 그린은 공개적 지지가 필요한 이유에 대하여 '공개 지지'는 긴 재판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변호사의 최후 변론과 유사하다고 주장합니다. 배심원 격인 유권자의 선택을 돕기 위하여 신문사가 판단 근거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읽힙니다.
미국 신문의 이 같은 전통이 처음부터 순기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공개 지지' 관행은 특정 정치인이나 정파가 신문사와 강하게 유착되던 시대의 산물입니다. 미국에서는 건국 직후 정치인이 신문사를 소유하기도 했고, 신문사가 특정 정파를 옹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노골적인 유착은 사라졌습니다. 정론지를 표방하는 신문사라면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것은 미국에서도 상식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유명 신문사들은 사실과 의견의 구분, 특히 기사와 사설의 분리를 준수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문 사설에서는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밝히더라도 기사는 특정 후보에 편향되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행위 규범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는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 사설을 게재하긴 했지만, 이 사설은 뉴욕타임스 기사와는 무관하다고 봐야합니다. 해리스 지지 사설은 편집위원회(editorial board)에서 썼습니다. 편집위원회는 한국 신문사의 논설실에 해당합니다. 사설을 담당하는 편집위원회는 편집국(newsroom)과 분리돼 있습니다. 편집위원회 의견이 편집국이나 뉴욕타임스 전체 의견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게 편집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천명하는 운영 방침입니다.
편집국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기사의 중립성이나 공정성에 대한 독자들의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뉴욕타임스는 편집국과 논설실 사이에 '차이니즈월'을 두고 있는 셈입니다. 해리스 지지 사설이 등장했지만, 해리스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편집국 기자들이 해리스를 향해 칼날을 꺼내들어야 한다는 압력이 뉴욕타임스 안팎에 엄연히 존재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대형 신문사들이 대선을 앞두고 특정 후보에 대하여 공개 지지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흔히 미국의 4대 일간지로 뉴욕타임스 이외에 워싱턴포스트와 USA투데이, LA타임스를 꼽는데 뉴욕타임스를 제외하고 나머지 3곳은 공개 지지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와 LA타임스에서는 언론사 내부에서 해리스에 대한 지지를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공화당 후보 트럼프 눈치보기냐는 비판이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LA타임스의 로버트 그린이 신문사의 이런 결정에 반발해 사표를 내기도 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나 LA타임스 모두 트럼프 눈치보기는 아니라는게 회사의 공식 입장이지만, 진통과 논란은 꽤 이어질 것 같습니다.
다른 신문사 가운데서도 지지 의사를 표명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곳이 적지 않습니다. 탬파베이타임스, 미네소타스타트리뷴 등 지역 사회에서 인정받는, '작지만 강한' 신문들도 지지 후보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미국 언론계에서는 지지 후보 비공개가 이제 새로운 흐름이 된 것인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신문사는 장기적으로도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미국 대통령 역사와 관련된 자료 집계 사이트 '미국 대통령 프로젝트' (the American Presidency Project)를 운영하는 존 울리 캘리포니아대학교 산타바바라 캠퍼스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2008년만 해도 전국의 100대 신문 중 92곳이 민주당 버락 오바마나 공화당 존 매케인을 지지했지만, 2020년엔 54곳만 지지 후보를 밝혔습니다. 이번 선거 때는 더 적을 것으로 보이는데, 집계도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울리 교수는 전했습니다.
미국 언론사들이 유구한 전통을 버리고 침묵을 선택하는 이유는 뭘까요? 이유를 꼽자면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미디어 분석가 릭 에드몬드가 미국의 저널리즘 교육기관 포인터(Poynter)에 게재한 글의 시각이 신선합니다.
릭 에드몬드는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서 많은 독자들이 디지털 매체로 신문을 읽고 있다는 점을 거론합니다. 미국 신문기업 개닛(Gannett)의 분석이긴 합니다만, 디지털 포맷에서는 '사설'이 잘 읽히지 않는 콘텐츠가 됐다고 합니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사설이 유권자들의 선택에 큰 도움이 되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또 기사와 사설을 분리해서 운영한다고 신문사에서 설명을 하더라도 디지털 매체로 신문을 읽는 독자들은 이런 점을 잘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고 릭 에드몬드는 이야기합니다. 종이 신문을 펼쳐보면 사설란이 다른 기사와 두드러지게 구분돼있는 게 한 눈에 들어오지만, 모니터나 스마트폰으로 신문을 읽으면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사설을 기사로 오해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물론 신문들이 지지 후보를 감추는 근본 원인이 양극화된 여론이라는 데는 언론 전문가 사이에 이견이 없습니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행동이 신문사 입장에서 너무나 판돈이 큰 도박이 됐죠.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의 반발을 사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 신뢰도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존 창업자이면서 워싱턴포스트 소유주이기도 한 제프 베조스 역시 워싱턴포스트에 신뢰도를 제고하기 위하여 후보 지지를 자제하는 게 맞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사실 종이 신문 애호가면서 미국 신문들의 과감한 사설을 조금은 동경했었습니다. 디지털 시대엔 미국 신문의 야성도 차츰 옛말이 되어가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