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2009년에 등장했던 광고 문구입니다. 광고 속 영상에서는 이 말과 함께 양복을 갖춰 입은 남자 두 명이 등장합니다. 2025년의 시대 정신과 감성으로 보면 살짝 촌스럽게 느껴지는 광고입니다. 이 시대의 시대 정신은 어쨌든 전기차고, 감성은 테슬라니까요. 요즘은 그랜저가 몰개성과 무취향의 상징같은 존재로 느껴지기도 하죠.
"아저씨 티 내냐?"
현대차의 라이벌 회사가 2025년에 그랜저 광고를 패러디해 저격한다면 이런 광고 카피가 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자들의 심리라는게 자랑하거나 '꼽주거나' 둘 중 하나니까요. 심지어 상대방에게 타격감이 크게 전달되는 말을 주고받아야 진짜 친한 친구로 상호 승인하는 문화도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친구들과 겯고틀면서 지낸 것 같고, 그러다 대부분의 친구와 헤어진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안 그래도 여러 일로 마모된 감정이 누군가의 '자랑질'이나 '꼽질'을 견디기는 어려웠으니까요. 물론 제가 가해자가 된 적도 제법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이게 저만의 경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맥스 디킨스라는 영국의 남자 코미디언은 결혼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친구가 너무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발견합니다. 다른 남자들도 비슷한 상황인지 알아보다 "돈, 일, 건강 등의 진지한 주제에 대해 의논할 수 있는 친구가 거의 없다고 답한 사람이 응답자 중의 절반"이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알게 됩니다.
맥스 디킨스는 왜 남자들에게 친구가 점점 사라지는지 연구를 하다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라는 책을 쓰기에 이릅니다. 맥스는 남자들이 친밀감에 대한 어휘를 배우지 못했다는 점을 발견합니다. 영국 남자들의 화법이 책에 등장하는데 한국 남자들의 '그것'과 상당히 흡사합니다. 결혼한 친구에게 "아직 이혼 안 당했어?"라고 인사를 하거나 새로 모자를 사서 쓴 친구에게 "머리 꼭대기에 달린 닭볏은 뭐냐?"라며 면박을 주는거죠.
맥스에 따르면, 남성은 사회적으로 과장된 페르소나를 가지려 합니다. 자신과 타인을 구분해 자신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묘사하는데 익숙합니다. 어려서부터 상대방과 정서적, 감정적으로 분리하는 훈련을 하기도 합니다. 대신 과시와 경쟁, 모멸과 조롱이라는 유해한 남성성으로 자신을 방어합니다. 그리고 성인 남성들은 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인간 관계를 부수적인 단역 취급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남성들에게 성공의 상징은 물질이지 관계가 아닙니다.
그래도 큰 일이 닥치면 손내밀 친구 한 둘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남자들도 많습니다. 아주 빗나가는 기대는 아닐 겁니다. 그런데 위기만을 대비하며 사는 게 인생은 아니지 않냐고, 맥스는 조언합니다. 그러면 대체 얼마 남지 않은 친구들과 '절교'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궁금합니다. 맥스가 책의 말미에서 제시하는 해법은 명쾌합니다.
"누군가 도움을 청하면 나타나기.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먼저 나타나기"
※ 그랜저에 대한 서술은 저의 주관적인 인상 비평입니다. 참고로 저는 '뚜벅이'라 자동차에 대하여 제대로 된 감식안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랜저 차주 분들의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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