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작년까지 미국 NBC 방송의 메인뉴스 기상캐스터는 앨 로커(Al Roker)라는 일흔 살 '할아버지'였습니다. (위 사진 속 인물입니다) 로커는 1974년부터 날씨 뉴스 진행을 했습니다. 40년 넘게 한 우물을 판 셈입니다. 로커는 2005년 허리케인 윌마를 몸으로 맞아가며 생중계를 해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 로커는 기상학을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40년 관록에서 나오는 여유로움이 화면으로도 느껴집니다.
다른 방송사에서는 대학교에서 기상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기상캐스터로 주로 등장합니다. 화면에 등장하는 직함도 weatherman이나 weather presenter가 아니라 meteorologist, 그러니까 기상학자입니다. (참고로 로커는 자기 홈페이지에서 자신을 weatherman으로 소개합니다.) 과학자들이 날씨 뉴스를 진행하는 겁니다.
과학자라고 하니 '방송 진행 능력'에 대해 약간 의구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방송에 나오는 기상학자들은 대부분 미국기상협회(National Weather Association)라는 민간단체에서 인증(Seal of Approval)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인증을 받으려면 필기 시험에 합격해야 하고, 자신의 날씨 뉴스 방송분을 협회에 제출해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당연히 방송사에서도 자사의 기상캐스터가 미국기상협회 인증을 받은 기상학자라는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알립니다. 미국기상학회(the American Meteorological Society)에서도 비슷한 제도를 운영합니다. 필기 시험을 통과하고, 방송 영상도 합격점을 받은 기상캐스터에게 '방송기상학자’ 자격(Certification for Broadcast Meteorologist)을 줍니다.
미국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최근 우리나라 어느 기상캐스터의 사망 소식과 그와 관련된 뉴스를 전해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라면, 책임을 져야 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하고, 직장 내 문화도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프리랜서의 근로자성에 대해서도 다시 짚어보는 과정도 필요해 보입니다. 다만, 한국 사회가 기상캐스터를 '뉴스의 꽃'으로 여기고 그들의 직업적 전문성을 어떻게 심화할지 고민하지 않으면 기상캐스터는 계속 불안정한 직업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기상학자나 일흔 살 할아버지가 날씨 뉴스를 전하는 모습은 한국에선 그려볼 수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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