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재미있는 실험 하나를 떠올려 봅시다. 세 사람으로 이뤄진 팀이 다른 팀과 토론을 벌입니다. 일종의 '토론 배틀'이죠. 세 사람 가운데 무작위로 한 명을 선발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조장입니다. 조장은 다른 팀원들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깁니다. 나머지 두 사람이 얼마나 토론을 잘 했는지, 우리 팀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 전적으로 조장이 판단합니다. 토론이 마무리되고 뇌를 써서 출출해진 마당에 때마침 과자 5개가 간식으로 나옵니다. 세 사람이니까 일단 하나씩 먹습니다. 어라, 사람은 셋인데 이제 과자는 두 개가 남았습니다. 참 얄궂은 상황이죠? 네 번째 과자는 누구 차지가 될까요?
스탠퍼드대학교의 심리학자 대처 켈트너와 동료들이 실제로 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실험을 해보니 흥미롭고,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네 번째 과자는 조장이 먹었습니다. 이기적인 모습이 얄밉기도 한데, 심지어 조장은 다른 조원들과는 달리 지저분하게 먹었습니다. 과자 부스러기를 얼굴에 묻히기도 하고 과자가 올려져있던 탁자를 더럽히기도 했습니다. 아주 잠깐이라도 권력의 단맛을 맛보면 다른 사람의 시선과 감정에 무감각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실험은 아일랜드의 인지신경과학자 이안 로버트슨이 쓴 책 <<승자의 뇌>>에 등장합니다.) 권력을 움켜쥐는 순간 인간은 공감 능력을 잃고, 자기중심주의의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어느 전직 검사로부터 술자리에서 비슷한 일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초임 검사 시절에 경찰서에 가서 경찰서장을 만났는데 자기도 모르게 상석에 앉게 되더라는 경험담입니다. 그 분은 지금 생각해보면 민망하기 이를 데 없다며 얼른 '소맥'을 털어넣었습니다. 저도 '갑' 행세를 하며 누군가를 상대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쥐고 있는 권력이라고는 한 줌도 되지 않지만, 사십을 넘기면 나이도 벼슬이 되는 법이니까요. 편혜영 작가의 소설 <<홀>>에는 "사십대야말라고 죄를 지을 조건을 갖추는 시기였다...권력을 가진 자는 오만해서 손쉽게 악행을 저지른다."는 문장이 나옵니다. 소설 속 문장이 남 일 같지 않아 냉큼 '소맥'을 제조했습니다. 취기로라도 그 순간을 잊고 싶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타인과 나 사이에 권력의 낙차가 존재하는지, 내가 가진 권력이 타인과 나의 관계를 어떻게 비틀 수 있는지 예민하게 파악하는 역량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지나간 주말과 휴일 내내 리모콘을 들고 OTT와 유튜브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든 생각입니다. 알고리즘 때문인지, 유독 정치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아직 선거전 초반이다보니 정책이나 공약에 대한 이야기는 선문답 수준에 그쳤습니다. 하릴없이 시시한 정치인들의 농담이나 시시콜콜한 신변잡기를 귓결에 스쳐들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네 번째 과자를 굳이 사양할 사람을 찾다 시간을 보냈습니다. 말의 성찬으로 꽉찬 휴일이었지만, 헛헛합니다. |